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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평양을 위한 기도 운영자 201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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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위한 기도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 북한은 신앙적으로 매우 뜨거운 곳이었습니다. 평양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도 ‘1907년 대부흥은 알고 있습니다. 그 대부흥이 일어난 곳이 바로 평양입니다. 그 이전에 토마스 목사가 순교한 곳도 평양이고, 1907년에 장로교의 독로회(獨老會)가 조직된 곳도 평양입니다. 독로회는 장로교 최초의 노회로, ‘하나뿐인 노회라는 뜻이 아니라 독립노회라는 뜻으로, 노회의 회의록 서문에는 이는 실노 대한국 독닙 로회로다.”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1912년에 장로교의 첫 총회가 열린 곳도 평양인데, 이 총회에서는 중국 산둥에 선교사를 파송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이 들어온 지 27년 만에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교회로, 피선교국에서 선교국으로 바뀐 셈입니다. 물론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1938년에 열린 장로교 27차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하였는데 이 총회도 평양에서 열렸습니다. 평양은 이와 같이 한국교회에서 부인일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아펜젤러 선교사에 이어 언더우드 선교사가 1887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평양을 방문하였고, 1890년 북장로회의 모펫선교사도 이곳을 찾습니다. 1893년부터는 모펫과 리(G. Lee) 선교사가 평양에 정주하면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평양은 장로교의 도시로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신학교도 평양에 세웠습니다.

평양에는 1907년 대부흥의 발원지인 장대현교회를 비롯하여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과 송창근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산정현교회, 박봉랑목사님이 전도사로 시무하셨던 서문밖교회 등 기라성 같은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가끔 TV에서 평양 시내를 비칠 때면, 교회사를 아는 저는 많은 상념에 사로잡힙니다. ‘만수대 예술극장을 보면 그 자리에 있던 서문밖교회가 떠오르고 인민대학습당을 보면 그 자리에 있던 남산현교회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그 땅이 다시금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땅이 되기를 늘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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