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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순종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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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7 친구
운영자 2025.9.5 조회 21

                                                 친구

 

요즘 젊은이들은 가장 친한 친구를 베프라고 부릅니다. Best friend의 약자입니다. 저에게도 베프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대답할 친구가 있습니다. 현재 전북 군산에서 목회하고 있는 신학교 동기입니다. 그는 저에게 데미안같은 친구입니다. 20살에 만난 그는 얼마나 진지하고 진실하고 성실한지 20살 같지 않았습니다. 20살의 청년에게서 풍겨 나오는 반듯함과 원숙함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같은 교회를 봉사했고, 1학년 2학기 때 기숙사 룸메이트였습니다. 그렇게 성실했던 그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1학년 2학기 후반부터 곁길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둘은 너무 규범적이고 모범적이다. 이 틀을 깨야 한다!” 그러면서 그날부터 수업도 안 들어가고 밤에는 책을 읽고 낮에는 잠을 잤습니다. 방 청소도 하지 말자 하고, 모든 질서를 뒤집으려 했습니다. 자세히 기록할 수 없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일탈을 저에게 권유했습니다. 저는 그의 일탈을 흉내내어 보기도 했지만, 그의 경지(?)를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하든지 진지하고 철저했습니다. 저는 이듬해 2학년으로 올라갔지만. 그는 그만 유급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일 년 정도의 일탈을 끝내고 다시 그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일탈에서 돌아오면서 한 그의 말은 인생은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인생을 플러스 마이너스로 계산하며 살지 말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졸업 후 농촌목회의 꿈을 품고 첫 목회지로 전라북도 순창의 작은 농촌교회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일관되게 자신의 꿈을 일구어 갔습니다. 존경하는 선배목사님들이 은퇴하실 때마다 그를 후임으로 천거했지만, 한 번도 응하지 않고 줄곧 자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저는 그를 거울삼아 늘 자신을 돌아보곤 했습니다.

그런 그가 골수암으로 투병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지난 주중에는 호스피스 병동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통화를 했는데 담담하고 평안했습니다. 자신의 장례를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입관 예배는 동기회에 부탁했고, 설교자는 저로 되어 있습니다. 제 영혼에 천둥과 번개가 칩니다. 그는 갈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저는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건강과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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