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와 시작하겠는가? (1월 4일 청소년부 설교 요약)
- 홍현희 2026.1.4 조회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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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제목은 "누구와 시작하겠는가?"입니다.
이제 우리는 2025년을 지나 2026년이라는 새로운 해를 맞이했습니다. 해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시작”입니다.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시작은 정말 중요합니다.
왜 시작이 중요할까요? 시작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머릿속으로 많은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생각 속에 머무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실제로 시작하는 순간, 그 생각은 현실이 되고 보이지 않던 것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작은 분명한 의미를 가집니다.
또 하나, 시작은 단순히 출발선에 서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처음에 몸을 어느 방향으로 틀어 놓느냐에 따라, 나중에 도착하게 될 곳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이처럼 시작은 정말 중요한데, 우리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 반드시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누구와 함께 시작하느냐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혼자 살아가지 않습니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선생님이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나는 아무도 없어”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반드시 누군가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와 함께하느냐는 내가 어떤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것인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결국 우리 삶 전체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칩니다.
사실 누구와 시작하느냐는 그 끝이 어디쯤일지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도 합니다.
믿을 만한 사람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경우와, 사기꾼과 함께 시작한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후자의 경우 시작부터 뭔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고, 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또 충성된 종에게 일을 맡긴 주인과, 게으른 종에게 일을 맡긴 주인의 결과도 전혀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이야기로 가져와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팀 프로젝트나 조별 과제를 할 때, 우리 조에 성실하고 열심히 하며 실력도 있는 사람이 함께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아직 과제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약속도 잘 지키지 않고, 숙제도 자주 하지 않으며, 수업 시간마다 자는 사람과 같은 조가 되면 어떻겠습니까? 시작부터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결과가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누구와 시작하느냐가 그 끝을 미리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구와 함께 시작하느냐는 참 중요합니다.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가장 선한 영향력을 주시고, 가장 믿을 만한 분을 이미 곁에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신실하시다는 것은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분이고,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며, 우리가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믿을 만한 분이라는 사실은 성경 전체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은 선물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내가 믿은 것 아닌가요? 그런데 왜 믿음이 선물인가요?” 광고를 보면 “믿을 만한 기업”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 기업이 믿을 만한 이유는 말만 잘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믿을 만한 행동과 근거를 계속해서 보여 왔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상품도 엉망이고, 서비스도 엉망이며, 말도 매번 바뀌는 기업을 우리가 “그래도 믿어야지”라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정말 믿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으라고만 요구하신 분이 아니라, 믿을 만한 근거를 먼저 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우리를 위해 아들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충분하고도 넘치는 근거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이번 주 말씀 암송 구절입니다.여기서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어 알파벳의 처음 글자와 마지막 글자입니다. 영어로 치면 “A부터 Z까지”와 같은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같은 뜻을 세 번 반복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 성경에서 같은 말을 반복할 때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강조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놓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말씀이 나온 위치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거의 마지막 책이고, 22장은 그 마지막 장입니다. 말하자면 성경이 “끝”을 말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시작이고, 내가 끝이다.” 이것은 단순히 “나는 위대하다”는 말이 아니라, 역사의 주인이 누구이며, 우리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를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시작”만 함께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끝”도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은 끝을 붙잡고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종교를 선택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인생의 시작과 끝, 내 시간의 처음과 마지막을 붙드실 수 있는 분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이런 다짐들을 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진짜 운동하겠다.” “이번에는 진짜 공부하겠다.” “이번에는 책을 좀 읽겠다.” 그런데 2주, 3주가 지나면 보통 어떻게 됩니까? 마음처럼 잘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가 특별히 약해서가 아니라, 사람은 원래 흔들리는 존재이고, 환경은 계속 변하며, 감정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쉬운데 끝까지 가는 것은 그래서 어렵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좋아도 변하기도 하고, 계속 함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끝마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시작하는 것, 끝까지 갈 수 있는 분과 함께 시작하는 것, 믿을 수 있는 분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 2026년 첫 주 예배를 드리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질문은 딱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이 한 해를 누구와 시작하시겠습니까?”
전도사가 좋아하는 영미시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John Donne의 「A Valediction: Forbidding Mourning」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쓴 시입니다.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Thy firmness makes my circle just,
And makes me end where I begun.“당신의 견고함이 나의 원을 정확하게 만들고,
내가 시작한 바로 그 지점에서 끝나게 합니다.”쉽게 말하면, 나와 당신은 컴퍼스의 두 다리와 같아서, 당신은 내가 시작한 지점에서 정확하게 마칠 수 있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누구보다도 우리의 인생의 원을 정확하게 그리고 끝까지 마치게 하실 수 있는 분, 견고한 컴퍼스의 한쪽 다리와 같은 예수님과 2026년 한 해를 시작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여기서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전도사님, 알겠습니다. 저도 예수님과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건가요?” 맞는 질문입니다. 예수님과 시작하자는 말이 그냥 예쁜 문장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시작 버튼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결심으로만 굴러가지 않고, 작은 습관과 선택으로 굴러갑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과 시작한다”는 것을 세 가지로 아주 구체적으로 붙잡아 보려고 합니다.
첫째, 하루의 첫 시간을 예수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 하루의 첫 장면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켜는 사람이 있습니까? 알람을 끄고, 메시지를 확인하고, SNS를 보고, 영상 하나를 보고 나면 마음이 어떻습니까? 비교가 들어오고, 불안이 들어오며, 마음이 시끄러워집니다. 하루가 시작부터 분주해집니다. 길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아침마다 30분씩 QT를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딱 3분이면 됩니다. 눈을 뜨자마자 이렇게 세 문장만 기도해도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새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십시오. 제 마음의 기준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십시오.”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 13절을 천천히 한 번 읽으십시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이렇게 하루의 첫 단추를 예수님께 끼우는 것입니다.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합니다. 첫 방향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둘째, 선택의 판단을 예수님께 드리며 시작하십시오.
우리의 삶은 사실 선택의 연속입니다.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할지, 어떤 말을 참을지, 단톡방에서 분위기에 휩쓸릴지 멈출지, 시험에서 정직할지 말지, SNS에 올릴지 말지, 누군가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할지 말지. 이런 선택들이 쌓여서 결국 여러분이 됩니다.예수님과 시작한다는 것은 선택의 순간에 이런 질문을 넣는 것입니다.
“이 선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이 선택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할까?”유혹은 대체로 “지금 당장”만 보여 줍니다. “지금만 편하면 돼.” “지금만 인정받으면 돼.” “지금만 재밌으면 돼.” 그러나 예수님은 시작과 끝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지금”만 보지 않고 “끝”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 앞에서 선택은 이렇게 바뀝니다.
“이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까, 무너뜨릴까?”
“이 행동이 나를 자유롭게 할까, 묶어 버릴까?”
“이 선택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할까, 멀어지게 할까?”끝을 붙잡고 계신 분 앞에서 시작을 결정하는 것, 그것이 두 번째입니다.
셋째, 혼자 시작하지 말고 공동체와 함께 시작하십시오.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시작하라”는 말은 신앙에서 특히 더 맞습니다.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혼자서도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무너지는 날, 죄책감이 올라오는 날, 친구 관계가 깨지는 날, 성적이 내려가는 날, 집에서 힘든 일이 생기는 날에는 혼자서는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장작불은 함께 있을 때는 활활 타오르지만, 그 가운데서 나뭇가지 하나를 밖으로 꺼내면 곧 불씨가 사그라들고 식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로,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예배, 소그룹, 선생님, 친구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끝까지 가기 위해 서로를 붙잡아 주고 일으켜 세워 주는 공동체입니다.
새해를 예수님과 시작하겠다는 결단은 “나 혼자 열심히 하겠다”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공동체 안에서 끝까지 가겠다”는 결단이어야 합니다. 혼자 하면 힘들지만, 함께하면 즐겁고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예배를 놓치지 않고, 말씀을 붙잡고, 함께 기도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 이것이 끝까지 가는 길을 실제로 만들어 줍니다.
이제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나는 시작과 끝이다.” 이 말은 이렇게 들으면 됩니다. “너의 시작을 나에게 맡겨라. 너의 끝까지 내가 붙잡겠다.”이 말씀이 새해에 큰 위로가 되는 이유는 우리가 “시작은 잘하고 싶은데 끝이 두려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하고 싶은데 또 실패할까 봐, 또 무너질까 봐 두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두려움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네가 끝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끝이다.”
예수님이 시작과 끝이시라는 말은 단지 “미래에 잘될 것이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을 붙잡는 약속입니다. 시작과 끝이신 주님이 오늘을 붙잡으시면, 오늘의 작은 선택들이 달라지고, 그 선택들이 모여 한 해가 달라지며, 결국 인생이 달라지게 됩니다. 신앙은 한 번의 감동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작은 시작들이 누적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26년을 시작하며 우리는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작은 시작”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이번 주, 하루 3분을 예수님께 먼저 드려 보십시오. 눈을 뜨자마자 3분, 세 문장 기도. 그리고 오늘 말씀 한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를 떠올리며 한 주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에는 특별히 좋은 기회도 있습니다. 바로 특별 새벽 기도입니다. 이것도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다 나오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한 번이라도 도전해 보는 것입니다.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시작한다고 해서 갑자기 인생이 모두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방향은 조금씩 주님께로 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방향이 바뀌면, 어느 순간 거리도 바뀝니다. 작은 시작이 큰 길을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런 새로운 마음을 먹으려고 할 때,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속삭일 것입니다. “너는 또 실패할 거야.” “봐, 하루 이틀밖에 못 가.” 그럴 때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시작과 끝이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넘어져도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무너져도 다시 붙잡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으로 결단하고 시작했는데 중간에 잘되지 않을 때, 사탄은 “봐라, 역시 너는 안 된다”라고 속삭일지 모릅니다. 그때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그래,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알파와 오메가 되신 주님, 시작과 끝이 되신 주님께서 나를 다시 붙들어 일으키시고 다시 시작하게 하실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처음과 끝이 되어 주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2026년 주님과 함께 새해를 믿음의 한 걸음으로 시작하게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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