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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2일(월) 마태복음 19장 운영자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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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금​​​요일​ 마태복음을 매일 한 장씩 묵상합니다. 하루 한 장씩 본문을 세심히 살피면서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제공하는 묵상은 간단한 예시입니다. 말씀을 차분히 읽고 자신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9장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ㄷ)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4월 22일(월) 마태복음 19장


<핵심묵상 구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마 19:21)

 

 

  마태복음 19장입니다. 19장은 총 3개의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이혼에 관한 교훈’입니다.(3-12) 이어 어린아이에 관한 교훈이 나오고(13-15) 마지막으로 부자 청년에 관한 교훈(16-30)이 나옵니다. 어린이와 부자 청년에 관한 교훈을 살핍니다. 이 두 교훈은 전혀 공통점이 없는 교훈처럼 보이지만, 이 두 교훈 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에 하신 교훈의 반복이라는 점입니다. 먼저 어린아이에 관한 교훈을 보면, 13절에서 예수님께 기도를 받기 위해 찾아 나온 사람 중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을 제자들이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게 꾸짖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직전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천국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는 작은 어린아이가, 실은 천국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큰 사람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경시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은 충격 그 자체였을 겁니다. 어린아이에 관한 말씀을 듣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을 대하는 제자들의 반응은 거부와 꾸짖음이었습니다. 분명히 바로 전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이 어린아이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들은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은 마치 한 번도 그런 가르침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반응은 부자 청년에 대한 교훈에서도 이어집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제자들은 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다가오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많았고, 도덕적으로 흠잡을 것이 없었고, 무엇보다 진지하게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16)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 손색이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근심하여 주님을 떠납니다.(22) 그 청년이 예수님을 떠난 데에는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21)는 다소 무리해 보이는 예수님의 요구가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랍니다. 도대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줄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예수님의 요구는 이미 마태복음 13장에서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어찌 보면 부자 청년에게 하신 예수님의 요구는 마태복음 13장 44절의 반복입니다. 이미 마태복음 13장의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이라면, 부자 청년을 향한 주님의 요구에 놀라워할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아서 모든 소유를 다 팔더라도 사야만 하는 귀한 것이라는 말씀을 이미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치 한 번도 그런 가르침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아직 멀었다”입니다. 이미 똑같은 말씀과 가르침을 들었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고 주님과는 정반대의 생각과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제자들을 보며 들게 된 생각입니다. 그러나 정작 제자들 자신은 “거의 다 왔다”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거의 다 왔다’는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주님을 닮기에는 또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의 모습은 낯설지가 않습니다. 수십 년을 들어온 말씀 중 단 한 말씀조차도 살아내지 못하고, 지난주에 들은 말씀도 실천하지 못하는 연약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연수가 점점 쌓여갈수록, 예수님을 깊이 알아 갈수록 ‘거의 다 왔다’라는 고백보다는 ‘아직 멀었다’는 표현이 성숙한 것입니다. 19장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30) 이 말씀을 이렇게 읽습니다. “그러나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는 자는 아직 멀리 있는 것이고, 도리어 아직 멀었다고 고백하는 자는 가장 가까이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 문 앞에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던 부자 청년은 떠나보내셨지만  천국 문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겨진 어린 아이들은 품에 안아 주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거의 다 왔다고, 주님을 위해 이젠 더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어쩌면 주님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주님께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멀리 있다고 생각되는 그때가 도리어 주님과 가장 가까이,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 묵상: 나는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기도 : “주여, 나는 아직 멀었으니 주의 종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 침묵과 머뭄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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