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기도문, 무엇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나? (2월 15일 설교 요약) | 홍현희 | 2026-02-15 | |||
|
|||||
|
설교 제목: 주기도문, 무엇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나? 설교 본문: 마태복음 6:7–13
우리 청소년부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답게”라는 표어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주기도문을 함께 외우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시리즈를 잠시 멈추고 한 가지 질문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인 주기도문은 누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을 보면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제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고 하시며 가르쳐 주신 기도가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기 전에, 먼저 기도에 대해 몇 가지를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라 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처럼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기도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은밀히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라. 둘째,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 하십니다. 중언부언이란 의미 없이 말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길게 말해야 하나님이 들으실 것처럼, 마음 없이 말을 이어 가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이미 다 아신다면, 굳이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문장 흐름만 보면 이렇게 말해도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나님이 다 아신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필요를 알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만약 기도가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전달하는 것이라면, 이미 다 아시는 하나님께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무엇입니까? 이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의 시작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말하느냐’입니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장 먼저 이렇게 부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이것은 놀라운 표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자녀의 말을 들으시는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 관계 위에서 시작됩니다. 사랑과 신뢰가 없는 대화는 겉도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사랑과 신뢰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진짜 대화가 됩니다. 기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위에서 시작되는 대화입니다. 그다음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와 정체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가 거룩하게 인정받는다는 뜻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세상의 것들과 같은 수준에 두지 않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감정, 세상의 가치보다 하나님을 더 높은 자리에 두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기도는 이것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 나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통치에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단순히 세상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과 열방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주기도문 앞부분은 결국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겠다는 고백입니다. 그 다음에야 우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이 기도는 매일 간당간당하게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공급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잊어버립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벌어 놓은 것 때문에 사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 말은 우리가 당당하게 “저는 용서했으니 저도 용서해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용서받은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용서받은 사람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기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악을 이길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열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우리의 필요를 구합니다. 이 순서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기도는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마태복음 6장 마지막에서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결국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나의 나 됨을 인정하는 것. 죄는 자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내가 올라가고, 내 자리에 하나님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그 자리를 다시 바로 세우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 모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돌아가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주문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나를 돌려 세우는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기도를 외울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 고백이 마음에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