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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9일(금) 마태복음 18장 운영자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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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금​​​요일​ 마태복음을 매일 한 장씩 묵상합니다. 하루 한 장씩 본문을 세심히 살피면서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제공하는 묵상은 간단한 예시입니다. 말씀을 차분히 읽고 자신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8장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4월 19일(금) 마태복음 18장


<핵심묵상 구절>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


  마태복음 18장입니다. 1절부터 10절까지는 큰 자 논쟁입니다. ‘누가 큰가?’라는 질문 속에는 일단 자신은 천국에는 당연히 들어간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교만한 마음을 아셨던 주님은 어린아이를 불러 세우시고(2절),‘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3절) ‘누가 큰가?’라는 생각과 태도로는 큰 자리는 고사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자기를 낮추는 사람(4절), 가장 연약하고 작은 자를 영접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10절) 이어서 길 잃은 양과 형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15절부터 20절에는 길을 잃은 형제가 나옵니다. 길을 잃고 죄를 범한 형제에 대해 먼저는 둘이서만 이야기를 해보고(15절), 그래도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이야기해보고(16절), 그래도 안 되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십니다.(17절) 18절 이하에서는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주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하시며(20절), 나와 함께하는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십니다. 마지막으로 21절부터 35절까지는 ‘용서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18장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십자가 지는 삶의 모습’입니다. 앞서 예수님은 16장과 17장에서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죽으심에 대해 두 번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두 번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꾸짖었고, 두 번째 말씀하실 때도 제자들은 매우 근심했습니다. 이렇게 두 번째로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철이 없게도 천국에서 누가 큰 자인지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는 삶에는 관심이 없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자기 사랑에만 몰두하고 있는 제자들의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여전히 자기 사랑에만 취해있는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또 길 잃은 양처럼 길 잃은 형제 하나가 있다면 그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더라도 다시 찾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의 모습’입니다. 어떻게든 내가 큰 자가 되려는 삶의 방식이 아닌, 곁에 있는 사람들을 세워주기 위해 나를 낮추고 그들을 높이는 삶, 아무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 천국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것이라고, 이것이 부활로 가는 십자가 지는 삶의 모습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99마리에 비하면 아주 작아 보이는 한 마리에 모든 관심을 쏟으라고 하십니다. 형제 하나가 죄를 범했을 때, 둘이 만나보고, 한두 사람을 데리고 또 이야기해보고, 교회에도 이야기해보고 이렇게 여러 과정들이 있는 것도 한 사람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쏟으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용서에 대한 비유도 형제의 잘못에 대해 적당히 하지 말고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17절은 약간 맥락이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이야기해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언뜻 이 말씀은 해볼 때까지 해보다 안되면 그냥 무시하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18장에 나오는 일관된 흐름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또 공생애 기간 동안 이방인과 세리를 향한 주님의 모습을 떠올려봐도 ‘무시하라’는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과 세리를 향해 누구보다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래서 메시지 성경은 같은 구절을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여라.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너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에게 회개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다시 베풀어야 한다.”(17절, 메시지 성경) 예수님의 십자가는 지극히 작고 죄 많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의 증거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처럼, 죄를 범한 한 사람처럼 무시해도 되는 그 한 사람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이런 우리를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귀히 여기시며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주시고, 기회를 주시고 끝까지 기다려주셨습니다. 그렇게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를 향해, 주님은 너희도 그 십자가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부인할 수 없도록 너무도 자세하게 십자가 지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알려 주십니다. 지극히 작고 죄 많은 나를 끝까지 사랑하셨던 주님처럼, 지극히 작고 죄 많은 누군가를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그 길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 묵상: 주님은 나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 기도 : “주여, 주변에 연약하고 작은 이들을 주님처럼 대하게 하옵소서!”   

● 침묵과 머뭄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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