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 | 2022년 3월 29일(화) - 사도행전 3:3-4, 7 | 운영자 | 2022-03-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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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화)
눈여겨보고
(사도행전 3:3-4, 7 / 개역개정) 3-4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표준새번역) 3-4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구걸을 하였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눈여겨 보고 나서, 그에게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지난해 기억나는 뉴스가 있습니다. 기사 제목은 “난간 올라서던 젊은 여성 구한 중학생... ‘모른 척 안된다 생각’”(연합뉴스 21.11.9)이었습니다. 경주의 한 여중생이 위기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성을 구해냈다는 기사였습니다. 5미터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여성을 보면서도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여럿이었으나 아무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는 대목과, 괜찮으냐고 물으며 그 여성에게 다가가서 그를 안고 진정시켜 한 목숨을 살려낸 학생의 모습이 대조되었습니다. 그 학생의 마음에 든 생각은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전 미문(美門) 앞에는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자기 몸으로 일해서 먹고살 수 없으니 남의 도움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그를 날마다 그곳에 데려다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하루종일 미문 앞에서 얻는 도움도,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도움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돕는다고 할 때도 이 정도의 도움을 생각합니다. 사실 가족이 아니라면 그 이상의 도움을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모여들던 오후 3시경, 수많은 인파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이 있었습니다. 급히 서둘러 기도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성전을 향하던 사람들은 거기 구걸하며 앉아 있는 이 사람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그가 거기 앉아 구걸하는 것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 보았어도 별로 새롭지 않게 여길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늘 거기 있어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대상 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 앞에 멈춰 서서 그를 눈여겨봅니다. 그러자 그 사람 역시 ‘무엇을 얻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그 두 사람을 빤히 쳐다봅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나에게는 당신이 바라는 은과 금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한테 있는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자, 일어나 걸으십시오”(6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고, 그 순간 태어날 때부터 자기 발로 걸어본 적이 없는 이 사람의 발목과 다리에 힘이 생겨,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기적입니다. 아니, 부활입니다. 베드로에게는 동전 한 닢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존재를 일으켜 세울 이름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것이 있습니다. 경주 의 여중생에게는 위기에 처한 한 여성에게 다가가는 용기와 그를 잠시 진정시킬 수 있는 작은 손과 팔이 있었습니다. 참 도움은 그냥 살던 대로 살게 돕는 것이 아니라 삶이 변화되도록 근원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기 도: 우리가 내미는 손이, 우리가 품어주는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구원하는 순간일지 모릅니다.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가진 것 없지만,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나누고 살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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