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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빛으로 고백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갑니다.
| 호준 청년 이야기_아! 행복하다! | 최찬용 | 2026-0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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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개인적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카뮈와 같은 결을 가진 프란츠 카프카를 오래 좋아해 왔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곧 두 작가의 공통점으로 이어졌습니다. 카프카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로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불안을 살았고, 카뮈는 식민지 알제리 출신으로 중심에 들지 못한 자리에서 세계의 부조리를 마주했습니다. 조건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전쟁과 체제 앞에서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끝까지 묻던 작가들이었습니다. 전쟁과 불안, 소속의 모호함 속에서 이들은 “존재란 무엇인가”, “이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그 질문을 부조리라 불렀고, 누군가는 불안이라 불렀지만, 두 사람 모두 삶의 의미를 외면하지는 않았습니다. 호준 청년도 비슷한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묻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을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심방 전에는 저 역시 ‘게임을 좋아하는 청년’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가 선택해 온 게임들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선택지를 주고, 그 선택이 다른 캐릭터와 세계에 영향을 미치며, 결국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구조였습니다. 호준 청년은 무의미한 버튼 연타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선택하고,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는 이야기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것은 카뮈가 말한 삶의 태도와도 닿아 있었습니다. 정답이 주어지지 않은 세계에서, 그래도 선택하고 살아가는 인간. 시스템이 대신 살아주지 않는 세계에서, 주체로 서는 존재 말입니다. 게임은 그에게 도피처라기보다, 세계를 연습하는 공간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이야기를 이어가다 카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호준 청년은 버블티를 좋아하지만 카페에 없는 메뉴네요...결국 초코라떼를 선택했습니다. 한 모금을 마시더니 갑자기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 행복하다.” 조금 뜬금없어 보여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렇게 여유롭게 음료 한 잔을 앞에 두고,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 짧은 한마디가 오래 남았습니다. 대단한 결론이 없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함께 앉아 이야기하는 시간 자체가 이미 충분하다는 고백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의 국룰 포즈를 취하는 엄지척 호준>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급히 설득하시기보다, 길 위에 앉아 질문을 던지시고 함께 머무르시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오늘의 만남은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의 삶을 가까이서 듣고, 그 질문의 방향이 꽤 진지하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호준 청년은 게임을 좋아하는 청년이기 전에,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려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죠.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기쁨으로 충만한 하루였습니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거창한 의미보다도,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장난을 칠 수 있는 긴장 없는 관계입니다." -청파감리교회 원로목사 김기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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