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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들을 늦게 주신 걸까?(1월 25일 청소년부 설교 요약본) 홍현희 202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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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하나님의 사람아브라함 ​, 하나님은 왜 약속하신 아들을 늦게 주신 걸까?

설교 본문: 창세기 15:15 / 16:13 / 21:13

결단 찬양: 하나님의 열심

 

[15:1-5]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16:1-3],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21:1-3]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 기억을 해보죠~ 아브라함 이야기는 창세기 12장에서 시작되요. 1절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죠.

너는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그리고 곧바로 2절에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여러분, “큰 민족이 되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당연히 자식이 필요하죠. 후손이 있어야 민족이 되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는데도, 아브람에게는 아이가 없었어요.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나이가 75세였어요. 그런데 가나안에 와서 1, 2, 3해가 넘어가고 또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아이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어떨 것 같아요? 하나님이 약속하셔서 말씀을 따라 왔는데 현실은 계속 그대로입니다.

우리도 그럴 때 있잖아요. 기도했는데 변화가 없어요. 말씀을 들었는데, 내게 하시는 말씀 맞는 것 같은데 상황은 그대로예요.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 마음속에서 이런 말들이 올라오곤 하죠. “하나님, 진짜 약속하신 거 맞아요?” “하나님, 저 잊으신 거 아니에요?” “하나님, 도대체 언제예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오늘 본문 15장에 아브람이 딱 그 상태였어요. 그런 아브람에게 151절에 하나님이 환상 중에 임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 말씀을 듣자, 아브람은 마음속에 있던 가장 큰 고민을 숨기지 않고 말합니다. 2절입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그리고 3절에서, 거의 반복하듯이 말합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자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해봐요~ 80세 넘은 할아버지인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네게 복을 주겠다고 하셔. 그런데 자식이 없어. 그럼 어떤 맘이 들겠어요?

뭐 무슨 복을 주셔도 나 이제 늙었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 자식은 안 주시고 무슨 다른 복을 자꾸 말하시는 거에요. 지금 내 상황은, 내 현실은 자식이 없어서 내 상속자가 내가 집에서 길리운 사람 엘리에셀이 될 지경인데요. ~ 한숨이 나오는 거죠.

 

성경은 아브라함을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슈퍼 믿음의 조상으로 꾸미지 않아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지만, 동시에 현실 앞에서 불안해하고, 낙담하고, 하소연하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주죠. 여러분, 저번에도 말했지만, 믿음이 있다는 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하소연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분명하게 답하십니다. 4절입니다.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 하늘을 보라고 하시며 말하시죠.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것입니다.

아브람이 자기 문제 속에 파묻혀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시선을 돌려 하나님을 보도록 옮기세요.

여러분, 우리는 나의 문제에 매여서 씨름하다 보면,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문제들에 매이면 문제보다도 훨씬 크신 하나님을 잊고, 우리 문제가 제일 커 보이죠. 그러나 그 때 우리의 시선을 돌려야 해요. 문제들 속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로 돌리는 우리가 되길,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이렇게 하늘의 별을 보며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다시 기대하게 됩니다. 아마 이제 곧 아이가 생기겠지.’‘이제 드디어 하나님이 일 하시겠지.’ 생각하며 곧 자식을 주실 줄 알았겠죠. 그런데 1, 2, 또 시간은 흐르는데도 빨리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한데, 분명히 나에게 말씀해 주셨는데.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 똑같은 거죠. 아이가 없어요. 거기다 약속보다 더 선명하게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안 그래도 늙은 자기 자신과 사래가 점점 더 늙어가는 현실이었어요. 그들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아주 조금 남아있던 가능성마저도 더 희미해져 가고, 상황은 더 불가능해 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초조함과 조바심이 그들의 마음에 점점 더 크게 자리 잡아 가고 있었어요.

 

아브람과 사래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우리조차 답답할 정도로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빨리 이루시지 않으시죠. “하나님, 왜 이렇게 늦으세요?” “왜 아브람에게 바로 자식을 안 주세요?”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세요?”

 

오늘 설교의 제목이 바로 그 질문입니다.

여러분, 이게 진짜 힘든 지점이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건 분명한데, 내 삶에서 바뀐 것이 없을 때.

말씀이 내 귀에는 선명한데, 내 눈에 보이는 현실은 여전히 같을 그런 시간들을 지날 때 말이에요.

 

결국 사라는 기다리다 못해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1613절에 나오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라는 자기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주어 아이를 얻자고 제안합니다.

여러분, 당시 문화에서는 이런 일이 흔히 있었습니다. 당시 대를 잇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했고, 현대처럼 의료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서 여종을 통해 아이를 얻는 풍습이 있었어요. 사래는 아브람에게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말하고 결국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 태어납니다.

 

여러분, 이 장면은 우리 이야기와 비슷하죠.

하나님을 기다리다가, 불안해지면 우리는 자꾸 이런 결론으로 가요. “ 안되겠다. 그냥 내가 방법을 찾아봐야겠다.”“이대로는 불안하니까 확실해 보이는 길을 잡아야겠다.” 이렇게요.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라기보다,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니까 마음이 흔들리고 이런 인간적인 방법이라도 쓰려고 하죠.

그렇게 16장의 끝이 이스마엘이 태어남으로 끝납니다.

[16: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겉으로 보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길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이스마엘이 태어난 이후 성경은 13년 동안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특별한 대화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뭔가 하나님과 끊긴 것 같은 침묵의 시간이 생기죠. 그리고 171절에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171절입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제 그냥 이스마엘로 만족하며 더 이상 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살아가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시며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네가 다시 나를 기대하길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때의 아브라함과 사라의 상태를 성경은 아주 냉정하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18: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여러분, 이건 무슨 뜻입니까? 사라는 늙었고, 생물학적으로 출산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을 말해요. 인간적으로는 끝까지 간 거예요. 더는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예요.

그런데 바로 그 불가능한 상황에서, 더 이상 가능을 생각하지 못하는 그 끝자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시며 그분의 약속을 이루십니다. 창세기 2113절입니다.

[21:1-3]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여러분, 하나님은 가능한 때가 아니라 불가능한 때에 일하셨습니다.

 

,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오늘 우리가 가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들을 늦게 주셨을까?”

여러분 하나님이 왜 그러신 것 같아요? 왜 약속하신 자식을 빨리 안 주신 걸까요? 아브라함이 속이 기다리다 속이 새까맣게 탔고, 기다리다 못해 자기가 인간적인 방법을 쓰는 실수도 하게...

빨리 자식을 주셨으면 그런 일이 없이 모두 다 happy한 거 아닌가요?

 

이 질문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할 때,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한 농부에게 게으른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농부는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큰 유산을 포도원에 숨겨 두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자식들은 그 말을 믿고 포도원 곳곳을 파헤치며 보물을 찾습니다. 보물을 찾기 위해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온 포도밭을 다 파헤쳐 봤지만 어디에도 끝내 금이나 은 같은 보물은 없었습니다. 실망한 삼형제는 한동안 허탈해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을, 포도밭엔 그 어느 해보다 탐스럽고 풍성한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렸어요. 그제야 자식들은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가 남긴 진짜 유산은 땅속의 보물이 아니라, 땀 흘려 일하게 만든 지혜였다는 것을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단지 이삭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어요.

단지 아브라함이 원하는 것만, “결과만 주시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사실 결과는 부수적인 거예요. 그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우리를 바꾸시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단단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길 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경험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 후에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가

그가 원래 대단한 강철 멘탈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원래 슈퍼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는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어요.

이삭은 내가 만든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하나님이 주셨다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다.’

이게 경험되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순종은 단순한 감정이나 용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삶 속에서 경험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 만들어집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종종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요. 기다림이 길어지면, 우리는 사라처럼

내가 방법을 만들어야겠다.” “이대로는 불안하니까, 확실한 길을 잡아야겠다.” 고 생각하곤 해요. 물론 우리는 책임감 있게 살아야 해요.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다림이 아니라, 하나님을 빼고 내 힘으로만 돌파하려는 선택을 하려고 해요. 그리고 그럴때 맘 한 구석에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가지죠.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려고 기다리게 하는 분이 아니세요.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늦게 주신 이유는

단지 시간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말로 아는 수준을 넘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으로 알기 원하셨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길 원하신 거죠.

 

하나님이 주시려는 것은 결과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관심은 우리 문제가 해결 되는 것’, ‘우리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이런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목적은 단 한 가지에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게 되는 것, 하나님을 더 알아 더 믿고 사랑하게 되길 원하는 거예요.

 

오늘 우리의 목적도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것이 되기를,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것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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