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5일(화) 요한계시록 3장 | 이평화 | 2025-03-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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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을 매일 한 장씩 묵상합니다. 본문을 세심히 살피면서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제공하는 묵상은 간단한 예시입니다. 말씀을 차분히 읽고 자신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3장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3월 25일(화) 요한계시록 3장 <핵심묵상 구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5-16)
다섯 번째는 사데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입니다(1~6). 사데는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당시 가장 번창한 상업 도시 중 하나였고, 휴양지로서 방탕과 사치와 부패의 온상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곳에 있는 사데교회는 스스로는 살았다고 하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죽은 교회였습니다(1). 이것은 영적으로 잠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들 자신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윌리엄 헨드릭슨은 이렇게 썼습니다. “사데 교회는 매우 평온한 교회였다. 그러나 그들이 즐긴 평강은 공동묘지의 평강이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은 없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죽어 있는데 교회는 분주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온전한 것을 찾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2). 그들은 각성해야 하고, 거의 죽게 된 중에도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붙들고 더욱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들이 사는 길은 돌이켜 회개하는 것뿐입니다(3).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들은 복음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도적 같이 임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교회에도 소수의 신실한 성도들은 있었습니다(4). 그들은 옷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유 1:23). 이기는 자들은 다 흰옷을 입을 것이고, 주님께서는 이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고,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입니다. 흰옷을 주신다는 것은 성도의 성화가 완성되어 영화로운 구원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사데교회는 오늘 한국교회가 처한 형편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교회일지 모릅니다. 여섯 번째는 빌라델비아교회입니다(7~13). 빌라델비아는 동방으로 가는 관문 도시로서, 동방으로 헬라문화를 전파할 목적으로 세워진 도시였습니다. 관문도시와 같이, 로마와 동방을 연결하는 문과 같은 곳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지만, 주님의 말씀을 굳게 지켰습니다(8).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매우 작은 교회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사탄의 회당을 대적할 만큼 강한 교회였습니다(9).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전도와 복음 사역에 대한 결실을 약속하십니다. 복음을 대적하던 자들이 무릎을 꿇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시험의 때에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0). 그러므로 빌라델비아 성도들이 힘쓸 것은 가진 복음을 굳게 잡아 면류관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11).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은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12). 지진이 많던 빌라델비아 지역의 건축 양식에서 중요한 것은 기둥이었습니다. 그래서 건물은 무너지더라도 기둥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고 크게 짓습니다. 지진에도 기둥은 남아있는데, 현재 빌라델비아교회 유적지에도 교회의 기둥이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참된 신자들에게 하나님과 흔들리지 않는 관계를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과 주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기록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된 백성임을 인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작은 능력을 가졌지만 복음의 진리를 지켰을 뿐 아니라, 복음 전하기를 힘썼던 빌라델비아교회는 세상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교회였을지 모르지만, 주님이 알아주시는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크기가 아니라 신실함으로 판단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14~22).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14).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멘이라고 반응할 줄 모르고, 충성이나 참됨과는 거리가 먼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상업적으로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고, 옷감과 피혁 제품으로 알려졌으며, 유명한 의과대학이 있어서 안약으로도 유명했던 도시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지역에 있는 교회에 토하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구역질이 난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십니다(16).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에 대한 주님의 책망입니다. 그들은 영적 자만으로 가득 차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17). 그러나 주님은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고 안약을 사서 발라 눈을 떠서 보라”고 하십니다(18). 불로 연단한 금은 믿음을 상징하고, 흰옷은 의의 옷이며, 안약을 바르라는 것은 영적 눈을 뜨라는 것입니다. 비록 이들의 모습이 토해낼 정도로 악한 것이었으나,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시듯 말씀하십니다(19).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신자들의 무관심과 교만 때문에, 성도들의 삶 밖에 서 계셨습니다(20). 성도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문밖에서 계속해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이 미온적인 자세와 오만함을 버리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가지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이고 영적이고 풍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며 하늘의 비밀을 간직한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입니다. 지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지만, 주님의 책망을 받지 않은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심한 책망만 받은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도 있었습니다. 지상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끊임없이 마귀는 교회를 허물기 위해 열심을 내고 쉬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성도들은 복음의 진리를 붙잡고, 주님 앞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하며 사는 일에 인내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싸우지 않는다면 결코 ‘이기는 자’가 될 수 없고, ‘이기는 자’에게 약속하신 그 놀라운 약속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비참함에 이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온전한 교회로 세워주시기를 간절히 구할 뿐입니다.
● 묵상: 나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신앙은 아닙니까? ● 기도: “주여, 사랑과 진리 안에 불꽃처럼 타오르게 하소서!" ● 침묵과 머뭄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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