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4일(금) 요한계시록 11장 | 이평화 | 2025-03-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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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을 매일 한 장씩 묵상합니다. 본문을 세심히 살피면서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제공하는 묵상은 간단한 예시입니다. 말씀을 차분히 읽고 자신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4월 4일(금) 요한계시록 11장 <핵심묵상 구절>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계 11:16-17) 아직 일곱 번째 나팔이 불기 전입니다. 사도는 이제 성전의 바깥마당(제사장의 뜰, 여인의 뜰 그리고 이방인의 뜰 등)과 예루살렘 성을 제외한, 성전 안(성소와 지성소)을 측량하라는 지시를 듣습니다(1~2). 이것은 참 교회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성령님께서 거듭나게 하신 교인들로 구성된 교회입니다(엡 2:21~22; 고전 3:16~17; 6:19). 희생 제물을 죽여 바치는 ‘제단’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가리킵니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정결케 된 죄인들입니다.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의 피로 씻겨진 자들로, 하나님께 참 예배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성전의 바깥마당이 42개월 동안 이방인들에게 주어져 짓밟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줄로 재어준 구역에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반면, 세속적 기독교, 명목상의 신자는 그 시기를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마흔두 달’(1260일)은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권세를 받은 두 증인(3)의 신원(身元)에 대해서는, 모세와 엘리야, 엘리야와 엘리사, 에녹과 엘리야,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율법과 선지자들, 율법과 복음, 구약과 신약, 말씀과 성령 등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었으나, 교회의 복음 사역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참된 교회(1~2)는 이렇게 두 증인으로 대변됩니다. 두 증인은 증거가 법적 효력을 가지기 위한 복수 증인으로서의 집단적 교회를 가리킵니다(신 17:6; 19:15). 3~13절은 교회의 복음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전체 그림입니다. 이 환상의 목적은 교회로 하여금 적대적 세상 앞에서 진리를 증거하라는 부르심에 복종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라는 말은, 회개가 복음 전파의 중요한 요소임을 가르쳐줍니다(3).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두 증인에 대한 연장된 묘사입니다. 이것은 스가랴 4장의 환상과 일치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두 감람나무로 기름부음을 받은 두 사람,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를 가리켰는데, 그와 같이 두 증인은 하나님의 권위를 입은 존재입니다. 두 촛대는 복음을 통하여 이 세상에 드러나는 빛을 상징합니다. 복음은 무력하지 않습니다(5~6). 복음은 힘과 영광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을 깨뜨리려는 자들은 도리어 복음에 의해서 깨뜨림을 당할 것입니다. 엘리야와 모세의 기적 행사가 그 사례입니다(6). 하지만 전세가 뒤바뀌는 때가 있습니다(7~10). 무저갱에서 올라온 사탄이 두 증인을 죽입니다. 이것은 교회 역사에 있는 많은 고난을 보여줍니다. 복음 전파의 황금기도 있지만 침체기도 있고, 심지어 파멸당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저들은 두 증인의 사체를 길에 놓고 모욕합니다(8). 소돔과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한 부정한 땅입니다. 큰 성은 예루살렘인데, 거기서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루살렘 성과 그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그로 인하여 잔치를 벌이고 즐거워했습니다(10). 세상은 죽은 교회로 인해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축제는 3일 반을 넘어가지 못합니다(9, 11). 악인들의 승리는 순간적일 뿐입니다. 진정한 반전이 일어납니다(11~13). 교회는 다시 일어서게 되어 있습니다(11). 부흥의 역사가 이것을 보여줍니다. 16세기 종교개혁, 17세기 잉글랜드의 청교도 운동 그리고 이후의 수많은 부흥 역사들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이러한 대반전의 모습은 세상에게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입니다. 이 부흥의 역사는 하늘로부터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들을 때까지 계속됩니다(12). 드디어 마지막에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의 때가 옵니다. 남은 자들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것은(13) 회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미 회개의 기회는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정복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 심판은 심판의 내용이라기보다, 심판을 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전망하고 있습니다(14~19).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15).” 하나님의 주권이 세워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24 장로는 하나님을 경배합니다(16). 24 장로는 신구약의 모든 성도를 대표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그들에게는 충만한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에게 상을 베푸십니다(18). 그러나 이날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11장은 언약궤 환상으로 끝나는데, 언약궤는 자기 백성에게는 시은소(은혜가 베풀어지는 곳)이지만, 악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박해 속에서 지키시지만, 교회는 순교를 당하는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에 다시 살려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복음 전도는 부침을 거듭하겠지만, 결코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 받은 모든 백성을 구원하기에 이를 것입니다. ● 묵상: 나의 삶 속에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붙들고 나아갑시다. ● 기도: “주여, 이 땅의 교회가 끝까지 주의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 침묵과 머뭄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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