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주 간직할 말씀: 복되어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 배새일 | 2024-1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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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부는 주일 설교 말씀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부모님과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붙잡아 살아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인데, 자녀와 부모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노력을 함께하면 더욱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 하나님은 긍휼한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사랑하시는데, 긍휼은 그중 하나입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것을 뜻하고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드러냅니다. 가령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벗어나 각자의 뜻대로 완악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내버리지 않으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탕자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아버지의 마음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긍휼한 마음입니다. 2. 중요한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로운 마음'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두 번에 걸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마 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거나 감사를 드릴 때, 제사를 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제사를 드리지 않지만, 하나님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헌금을 드리기도 하고, 기쁨으로 찬양을 정성껏 부르기도 합니다. 때로는 말씀을 읽고 쓰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애통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성이 담긴 이런 행위에 '자비'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종교적 열심에 '자비'가 깃들어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자비로운 처사를 본받아야 합니다.
3. 경청은 자비의 시작 하나님의 자비로운 처사는 예수님의 삶을 보면 쉽고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다음 구절들은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잘 담고 있습니다.
[마9: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시는데, 눈 먼 사람 둘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면서 예수를 뒤따라 왔다. [마15:22]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마17:15] "주님,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간질병으로 몹시 고통받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에 빠지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20:30] 그런데 눈 먼 사람 둘이 길 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 구절들에는 귀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나가실 때,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있는 힘껏 예수께 자비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많은 무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상황 속에서도 사그라드는 그 신음소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로운 처사를 본받으려면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자비의 시작은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주위에 불쌍히 여겨 달라는 외침을 듣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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